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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노동조합은 진정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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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오피니언

우리에게 노동조합은 진정 필요한가?

영웅은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노동조합은 정말 필요한가?

                                                                                           교육청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강동인

 

뭣 모르던 신규시절 나는 주제넘게 공무원으로서 교육행정직은 노동자가 아닌, 관리자와 함께 학교를 운영하는 권한과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업무의 대부분은 실무와 함께 관리자적 입장에서의 책임을 동시에 부담해야하는 것들이었기에 때문이었다.

 

그러나 9급에서 8급, 7급, 6급이 되어도 학교운영과 교육정책 수립에 어떤 실체적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고, 책임은 점점 무거워지고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교육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노동환경이 향상된 것도 책임이 덜해진 것도 아니었다. 학생 수가 감소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교원과 교육공무직은 교육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증원되었으나 지방공무원은 많은 학교가 신설되고 수만 가지 시책사업이 늘어났음에도 그에 비례한 증원 아닌 정원 축소만 있었다.


우리 보다 먼저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앞서 투쟁했던 교원과 공무직들의 눈부신 성과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우리와 함께 나누던 배분의 왜곡을 만들었다. 뺏고 뺏기는 힘의 논리가 이십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공무원이니, 회계전문가니, 행정실장이니 하는 어쭙잖은 체면치레에 도취되어 노동조합의 역할을 얕잡아 보고, 힘을 실어주는 일에 인색하고 조건적이었다.

 

그러다 상황에 몰려 길게는 이십년, 짧게는 십여 년을 뒤쳐져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도 수십 년 간 쌓아온 관록의 그들과 우리의 근력이 당장 같기를 바라는 어리석음까지 한 몫하며, 비겁한 무임승차의 논리를 더욱 강화시켰다.

 

나는 우리 안의 수백 가지 위선의 얼굴을 기억한다.

 

행동 없는 공허한 말뿐인 격려, 동참하지 않는 이기심을 감추기 위한 본질과 상관없는 비난, 한없이 낮춰보는 냉소주의, 얼렁뚱땅 헛갈리는 척(원래부터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음에도), 건성건성의 기만과 권위의식에 절은 힘겨루기 등등,...

 

지방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교원행정업무 경감 또는 교원업무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정의 내려지고 이관된 업무폭증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자이거나, 경쟁에서 항상 선택을 보장 받는 탄탄한 배경을 가진 것도 아닌, 늘 희생을 당연하게 강요받는 대부분의 우리가 마치 기관장이라도 되는 것 마냥 노동조합 활동을 폄하하고 경계한다면 그것은 위선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위상과 권익이 그들보다 위든 아래든, 지키고 있거나 폄훼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거래의 대가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교육행정에 종사하는 지방공무원인 우리는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배 위의 “노동 공동체”가 되어 있다.

 

노조활동이 배 갑판 아래에서 노를 젓는 일이라면, 무임승선 없이 모두 번갈아가며 노를 저어야 한다. 나는 이 이상 더 나은 노동조건의 개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 홀로 고고한 능력자라고 할지라도 함께 하고 있는 이 배에 무게를 싣고 있다면, 그 무게만큼 노를 저어야 행동이고 양심이다.

노동조합은 머리수의 논리이고, 행동력의 차이다.

 

행동하는 사람 1명을 가진 조직과 2명을 가진 조직, 3명, 4명,...100명, 1,000명, 만 명을 가진 조직의 차이를 우리는 지켜봐 왔다.

 

최근 우리 교육연맹의 충남교육청노동조합은 시국성명서의 내용으로 인해 교사단체에 의해 고소를 당했다. 이름과 직을 걸고 대외에 우리의 의견과 주장을 발표하는 행동 하나에도 개인 신변의 위협을 감수해야하는 일이 노동조합 활동의 실제 현실이다.

 

나의 일이 아닌 제3자인 객체로만 바라본다면 “사실 그대로를 글로 주장하는 일”이 무슨 대수라고 여기겠지만 모든 일에는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시국성명을 발표한 그날로 부터 밤낮없이 조직적으로 걸려오는 항의 전화와 사람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며 실수를 유도하는 녹음, 녹취를 기본으로 개인과 가족의 신상을 들먹이는 지능적 협박에 몇날며칠을 시달리는 피로함은 당하고 있는 사람만의 몫이다.

 

그들의 조직적 참여와 일사불란한 대응은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적으로 궁금증을 유발한다. 분명 우리보다 높은 위상과 처우임에도, 그것을 발판 삼아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우리보다 더 절실한 상황인가? 강 넘어 불구경하듯 관전자만 많은 우리와 달리, 새벽에도 외간 낮선 전화번호로 스스로 진창싸움을 거는 참전자가 넘쳐나는 그들은 두려움 없는 사람들인가?

 

그들은 다수이고 우리는 소수라는 따위의 말은 식상하다. 우리는 그들에 비해 약자의 위치라는 말도 따분하다. 주장의 논리와 명분을 따지며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훈계로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들만큼 노동조합 활동이 절실한가 모두에게 질문해본다.

 

기관은 그들만큼 우리를 위한 인력 충원을 해 주지도 않으며, 그들보다 높은 급여와 수당을 주지도 않는다. 또한 우리는 그들처럼 기관장이 될 수도 없으며 그들처럼 우리만을 위한 특별법도 없다. 심지어 노동3권마저도 온전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보다 행동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불세출의 영웅을 기다리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영웅의 탄생을 위한 무엇을 했나?

 

영웅은 원래 온갖 모함과 고난 속에서도 초인적으로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 갑자기 엑스칼리버를 뽑아들며 남다른 능력을 증명하며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인가?

 

어림없는 소리다.

 

나는 털끝 하나 티 없이, 공무원으로서 무언가 우월한 자태를 포기하지 않아야 함에도, 이미 그들과 함께 진창에서 충분히 상스러워진 누군가는 불쏘시개처럼 소모되어도 되는 존재처럼 떠밀던 이기심과 위선을 우리는 이제 버려야 한다.

 

남의 일처럼 또는 평론가나 심판처럼 관전만 하던 우리의 습관이 그들에게는 절실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정원과 인력은 줄어도 온갖 명분의 업무이관은 끝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수십 년간 참혹하게 후퇴되어 온 우리의 노동환경이 누구의 탓이라고 이야기하기에 앞서, 진정 참여하는 자세로 우리 한 명, 한 명이 주체가 되어 함께 행동해야 한다.

 

영웅은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 동참하는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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