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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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위한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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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임을위한행진곡

민중 스스로 만들고 지켜온 노래

가장 먼저 부른 민중가요, 가장 널리 알려진 민중가요는 어떤 노래일까요? 아마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닐까요? 이번엔 어떤 노래를 소개할까 고민하다 이제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이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임을위한행진곡 원곡 악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5월 시민 항쟁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최후까지 맞서 싸우다 숨진 윤상원과 그와 같이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다 1978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과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이 설명은 와전된 것으로 보입니다.

 

1982년 ‘5·18민중항쟁’ 2주기 문화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문화행사 준비 과정에서 “지난 2월에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있었는데 그걸 모티브로 해서 영혼결혼식에 바치고 가족들에게도 선물하자”고 황석영이 제안하여 35분짜리 노래극 ‘넋풀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황석영의 집에서 이루어진 노래극 ‘넋풀이’의 창작과 녹음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황석영, 김종률과 김희숙, 김은경, 오정묵, 이훈우 등 ‘광대’를 비롯한 15명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이는 전남대를 졸업하고 광주문화방송국 입사를 앞둔 오정묵이었습니다. 황석영의 집에서 녹음한 노래극 ‘넋풀이’ 테이프를 기독청년협의회를 통해 2천 개를 비밀리에 복사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고 합니다. 광주와 서울에서 빠른 속도로 구전으로 불리고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노래극 ‘넋풀이’에 수록된 7곡 중에서 엔딩 곡으로 김종률이 이미 작곡해 놓았던 멜로디에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다듬어 가사를 완성했습니다. 시 ‘묏비나리’를 살펴보면 시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거의 그대로 가사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기완 단독 작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혹은 백기완, 황석영 공동 작사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원곡을 들어보면 우리가 부르는 가사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나서 외치는’으로 부르는데, 원곡과 악보에는 ‘깨어나 소리치는’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원곡이 이동식 카세트로 조악하게 녹음되어 불분명하게 들리기도 하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인 듯합니다. 또 ‘앞서서 나가니’를 ‘앞서서 가나니’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미 우리의 입에 익숙해진 상황이라 굳이 수정해야 싶기도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에 머물지 않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불리고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진영에서 정파를 불문하고 불리며 그 의미를 확장해왔습니다. 한때 5·18 기념식에서조차 제창하지 못하는 노래였는데 이제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아시아 각국에서도 번안되어 불리고 있습니다. 민중 스스로 만들고 지켜온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가진 노래의 힘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옛 전남도청 앞의 민주광장에는 5·18 시계탑에서는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의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매우 소중한 일상에서의 기억 장치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에겐 밝혀야 할 것도 기억해야 할 것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민정연(꽃다지 기획자) 기자   노동과희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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